'노정연씨 수사', 중수부 노림수는?
입력 : 2012-05-31 15:32:06 수정 : 2012-05-31 15:32:3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37)씨에 대한 미국 아파트 구입자금 의혹에 대해 의욕적인 행보를 하면서, 그 배경에 대해서도 설왕설래들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번 수사를 두고 검찰은 "아파트 매도자 측의 외환 밀반입 혐의가 이번 수사의 초점이다. 노정연씨에 대한 수사가 아니다"고 여러 차례 선을 그었다.
 
그러나 미국 아파트 매도자인 경연희(43·여)씨가 피내사자 신분(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으로 최근 사흘간 검찰에 연이어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계약 당사자인 정연씨에 대한 소환조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아파트 구매자금 의혹' 뭔가?
 
지난 2월 시작된 이번 수사는 총선을 앞두고 잠시 주춤했으나 19대 국회가 개원되고 대선정국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 의혹 사건은 경씨로부터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 허드슨클럽 빌라를 산 정연씨가 잔금 100만달러를 지급하기 위해 현금 13억원을 환치기 수법으로 2009년 1월 경씨에게 송금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에 대한 수사의 시발점은 2009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일명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이던 대검 중수부는 5월11일 정연씨 부부를 소환조사했다.
 
중수부는 "박연차 전 회장의 홍콩법인 APC 계좌에서 40만달러가 2007년 9월 정연씨 지인의 계좌로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정연씨로부터 미국 뉴저지의 160만 달러짜리 주택을 계약하는데 이 돈을 썼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후인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공소권 없음' 결정과 함께 종결됐다.
 
◇극우단체 수사의뢰로 3년만에 수사재개
 
하지만 3년 후인 지난 2월 중수부는 다시 정연씨에 대한 미국 아파트 구입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조갑제 닷컴' 대표인 조갑제씨가 지난 1월 "경씨가 정연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 잔금 100만달러를 보내라고 요구했고, 이후 권양숙 여사로부터 일련번호가 나열된 새돈 10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월간조선을 통해 제기한 데 이어 극우 보수단체로 알려진 국민행동본부가 같은달 26일 수사의뢰를 한 데 따른 것이다.
 
조씨의 의혹 제기는 경씨의 단골인 미국 폭스우드 카지노 매니저 이달호(45)씨 형제의 제보로 시작됐다.
 
이씨 형제는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잔금 명목으로 현금 13억원이 든 상자 7개를 한 50~60대 남성의 안내로 경기 과천의 비닐하우스에서 받아 가져온 뒤 경씨의 지인인 은모씨에게 전달했고, 은씨가 이를 다시 미화 100만달러로 바꿔 경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수사 잘해봐야 '공소권 없음'?..중수부가 왜?
 
검찰은 지난 2월 은씨를 체포해 자금 전달 경위를 조사하고 이씨 형제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상대로 정연씨에게 아파트 매입대금을 대줬는지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박 전 회장은 관련성을 부인했다.
 
이후 검찰은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경씨의 귀국을 여러 경로로 요구했지만 경씨는 한동안 귀국하지 않았다. 대신 경씨는 현지에서 지인을 통해 "정연씨에게 13억원을 받은 적도 없고 권여사로부터 100만달러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지난 27일 돌연 귀국한 경씨가 28~30일까지 사흘간 조사를 받으면서 환치기 수법으로 몰래 빼돌린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연씨에 대한 수사 재개가 3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수사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과 배치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난 사건에 대한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없어, 대검 중수부가 굳이 이런 정도의 사건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아울러 중수부가 스스로 밝힌대로 경씨의 외환 밀반입 혐의가 이번 수사의 초점이라면 개인 혐의에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중수부가 직접 나선 셈이어서 '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 "노 대통령 수사는 종결..가족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일찌감치 '답'을 마련해 뒀다. 중수부 관계자는 지난 2월29일 수사 브리핑에서 "3년 전 노 전 대통령 수사는 종결한다고 했지만 그 가족에 대해서는 얘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일단 경씨에 대해 외환관리법 위반혐의가 적용되면 돈을 건넨 사람, 즉 정연씨 소환이 불가피하고 정연씨는 돈의 출처를 추궁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정 하에서 정연씨가 마련한 돈이 권여사로부터 나온 것이고, 부인은 했지만 이 자금이 박 전 회장이 지원한 것이라면 결국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사실상 다시 실시하게 되는 셈이다. 박 전 회장이 돈을 줬다면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준 것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중수부가 3년 전 종결한 사건을 중수부가 스스로 다시 수면위로 끌어 올리게 되는 것이다.
 
◇"수사의 끝 노 전 대통령까지 갈 수밖에"
 
한 고위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수사가 끝까지 간다면 결국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까지 갈 공산이 크다"며 "물론 혐의점이 있으면 수사를 해야 하지만, 이미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마당에 굳이 수사를 재개하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도 "수사의 끝을 생각해보면 결국 공소권이 없는데, '잘 해봐야 본전'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중수부 관계자는 31일 "환치기와 관련한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힌 뒤 "수사에 관한 사항에 대해 어떤 내용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각각 해석할 수 있는 점에서, 수사 내용을 중계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재개 의혹과 관련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경씨가 '환치기' 혐의에 대해 일부 시인한 것과 관련해 정연씨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가 현재 주장처럼 경씨의 환치기 혐의에 그칠지, 정연씨나 노 전 대통령의 가족 또는 그 이상의 범위까지 번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문재인 고문 정치공세 노출
 
때문에 이번 수사는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권 대선 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정계의 관측이다.
 
또 야당이 오랫동안 검찰개혁과 함께 중수부 폐지를 주장해 온 터라, 이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수부는 "정치적 오해를 피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행보로 보면 스스로 정치적 논란의 '폭풍' 속으로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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