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폭행 중 작은 상처..치료 필요하면 강간치상"
입력 : 2013-04-21 09:00:00 수정 : 2013-04-21 09: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만취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성폭행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경우, 그 상처가 자연 치료가 가능하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더라도 병원에서 상당기간 약물치료를 받았다면 가해자는 준강간치상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유인해 술을 먹인 뒤 만취하자 성폭행하고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혐의(준강간치상)로 기소된 박모씨(50)에 대한 상고심에서 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병원에서 진료받을 당시 염증 진단과 함께 항생제처방을 받았고 실제 약을 복용하는 등 치료를 받았으므로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일상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것이거나 합의에 따른 성교행위에서도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상해인 극히 경미한 상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비록 피해자를 진료한 의사가 피해자의 상처에 관해 2차적인 염증 소견만 없다면 자연치료가 가능한 상처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고 했더라도 결론은 같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그런데도 피해자의 상처가 준강간치상죄에서의 상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원심의 판단은 준강간치상죄에서의 상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자신이 자주 가던 카페 종업원 A씨(28·여)와 성관계를 가지려고 기회를 엿보다가 2006년 4월 A씨에게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놀러오라고 한 뒤 근처 와인바와 선술집에서 같이 술을 마신 다음 술에 만취해 잠든 A씨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잠에서 깬 A씨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고 '외음부 열상'진단과 함께 연고와 3일치 약 처방을 받았다. 당시 A씨는 상처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는 않았으나 1개월간 걸을 때 마다 통증으로 고생했다.
 
박씨는 2009년 5월 강간치상죄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A씨가 만취한 상태임을 이용해 박씨가 성폭했으므로 준강간치상죄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정보공개 5년을 명령했다.
 
박씨는 "A씨를 성폭행한 사실이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A씨가 입은 상해는 준강간치상죄의 상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A씨의 고소는 고소기간 1년을 지난 것으로 공소기각되어야 한다"며 항소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당시 A씨가 입은 상처는 합의에 따른 성교행위에서도 통상발생할 수 있는 정도의 상처로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고,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시일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의 경미한 것으로 준강간치상죄에서의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소기각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한 직후 산부인과에서 진단 및 처방을 받았고 항생제를 투약하는 등 상당기간 치료를 받았다"며 "이번 판결이 종전 대법원 판례에 반해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해에 대해서도 준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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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