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파트너 그대로 있는지도 몰라, 다시 찾아가는 과정"
수해 지원, 북한은 무시...정부, 민간단체에 '한 달 내 간접접촉' 제한 승인
입력 : 2024-09-03 14:59:28 수정 : 2024-09-04 14:25:55
수해를 입기 전인 올해 5월 8일 북한 압록강 위화도 일대를 촬영한 위성 사진. 북한 위화도와 인근 철로 침수 전후 비교 이미지. 2024.8.1 통일부 제공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북한에 수해 지원 의사를 밝힌 지 한 달이 넘었으나, 이미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북한은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대북협력단체들이 수해지원 협의를 하겠다며 제출한 대북접촉 신고를 수리했으나, 이 역시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지난 7월 말 기록적인 폭우로 압록강이 넘치면서 북한 평안북도와 자강도 지역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자 박종술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지난달 1일 "큰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견지에서 북한 이재민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면서 "지원 품목과 규모, 지원 방식 등에 대해서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와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공식 제안했습니다.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통일부가 대북지원부 같다"는 비판까지 했으나, 국내·외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발표문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등 '북한 주민'만 언급하고, 협의를 결정할 '북측 당국'은 거론하지 않았고, 또 이전까지 남·북 접촉이나 통지문에서 사용해온 '북측' 대신 '북한' 표현만 사용했습니다.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해서 접근하겠다는 현 정부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남한 수해 보도 거론하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 맹비난
 
북한은 이 제안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면서 무시하고 있는데요.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일 "지금 적들의 쓰레기 언론들은 우리 피해지역의 인명피해가 1000명 또는 15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되고 "구조임무 수행 중 여러 대의 직승기들이 추락된 것으로 보인다는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면서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북한은 한국을 포함해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8∼9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지역을 방문,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지금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에서 우리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의향을 전해오고 있다"며 사의를 표한 뒤 "자체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겁니다.
 
이에 따라 외부 지원은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지난 6월 '포괄적 전략적동반자관계 조약'을 맺은 러시아의 지원은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접-직접 접촉 나눠서 신청 첫 사례…민간단체들 접촉신청에 정부 조건 달아 승인
 
이런 가운데 정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어린이어깨동무, 월드비전 등 9개 대북 협력단체가 신청한 수해지원 대북 접촉신고 9건을 지난달 30일 수리했습니다. 이 단체들이 7월 30일에 처음 신청하고 통일부 보완요청에 따라 지난달 2일 서류를 완비했다는 점에서, 거의 한 달이나 걸린 겁니다.
 
이번에 정부는 접촉방식은 '간접 접촉', 기간은 '한 달'로 제한해 승인했습니다. 한 달 내에 북한 측과 직접 접촉이 아니라 우선 해외 동포 등 중개자를 접촉해 북한의 의사를 타진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겁니다. 이전 정부들에서 수해지원 등 인도적 목적의 대북접촉에 대해 보통 1년(최장 3년) 기간으로 하고, 접촉 형태를 구분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엄격한 승인'입니다. 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한 것은 피해 발생 직후 긴급지원도 필요하지만 본격 복구 과정에서 지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수리가 '간접 접촉'과 '직접 접촉'을 나눠서 신청하도록 해 수용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번 승인에 대해 "금번 수해 지원 목적에 한해 (접촉 신고를) 수리하는 것"이라며 "현재는 (단절된) 남북관계 상황 하에 필수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접촉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북 교류·협력의 문을 여는 기조 전환이 아니라 수해라는 인도주의 사안에 대한 예외적인 허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선중앙TV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월 8∼9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지역을 찾아 이재민 위로 등 현장점검에 나섰다고 관련 내용을 8월 10일 보도했다.(사진= 뉴시스)
 
북한, 민화협 등 대남 민간단체 교류 조직들 모두 정리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과 올해 초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및 전쟁 중인 두 교전국",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동족관계 부정·통일 폐기를 천명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헌법에 반영하고 대남기구도 정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우리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기능을 합쳐 대남사업을 총괄하던 통일전선부를 '노동당 중앙위 10국'으로 개편했으며,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물론이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과거 남측 민간단체들과 교류를 맡던 조직들도 모두 정리한 상태입니다.
 
수십 년간 대북협력사업을 해온 대북협력단체들도 새롭게 연결 라인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인데요. 이들 사이에서는 "이전 파트너들이 그대로 있는지도 모른다, 파트너부터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북 수해지원 성사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상황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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