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주4일제)②“장시간 노동은 성차별 원인”
세브란스병원 등 '성평등 위한 주4일제' 논의 본격화 돼
전문가들 "여성 노동시장 이탈 막고 일-가정 균형 효과"
입력 : 2024-08-23 06:00:00 수정 : 2024-08-23 06:00:00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장시간 노동은 여성들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해 성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여성은 육아·가사부담이 크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데, 주4일제를 도입해서 남성의 육아·가사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주4일제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참여를 늘려 사회 전반의 성평등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셈입니다. 
 
성평등을 위해 주4일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과 맞물려 세브란스병원이 주목을 받습니다. 지난해부터 노사합의로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주4일제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여성이 대부분인 간호사의 노동시장 이탈을 막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정희정 켄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시간 노동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측면 중 하나가 여성, 특히 자녀를 가진 여성들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이 성차별의 원인이 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정 교수는 2019년 발표한 ‘일·생활 균형 및 성평등 현안과 유연근로제의 한계’라는 논문에서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직종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컸고, 그런 직종일수록 여성들이 진입하기 어렵고 출산 이후 이직할 확률도 높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영국 사회에서 출산 이후 여성 대부분은 장시간 노동과 보육·가사를 병행할 수 없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기 경력과 관련이 적은 파트타임 직종을 고른다는 겁니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 교수는 “남성이 보육이나 가사를 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장시간 노동”이라면서 “여성이 출산 이후 '저임금 파트타임' 직종으로 옮겨가거나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남성은 혼자서 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성은 직장 내 승진이나 임금 인상에 지장이 될 만한 행동을 할 수 없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성별 소득격차와 원인을 분석하면서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노동자에게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일자리입니다.
 
골딘 교수는 “야간 근무와 주말 근무를 계속하며 시간을 일에 쏟아부으면 훨씬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부부가 다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면서 “결국 한 사람은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다른 한 사람은 노동시간이 짧고 근무 일정도 조정할 수 있지만 보수는 적은 ‘유연한 일자리’에 머물게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골딘 교수는 이런 분업 탓에 남성과 여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격차가 발생하고, 커리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부부의 공평성은 깨지고 성평등도 함께 버려진다”고 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시범사업 주목
 
정 교수와 골딘 교수 등이 지적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발견됩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들을 종합할 경우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4일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여성의 양육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남성이 가사·양육에 참여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겁니다.
 
간호사들이 서울 강서구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성평등 달성의 측면에서 세브란스병원의 주4일제 시범사업은 좋은 사례로 꼽힙니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병원 간호사들의 근속년수는 1~5년차 저숙련 간호사 비율이 35.7%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이 2023년 한 해 동안 주4일제 시범사업을 시행한 결과, 참여 간호사들의 스트레스와 번아웃, 퇴사·이직 비율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는 “간호사들은 워낙 장시간 근무를 하다 보니 고되고 이직률이 높아 1년 미만 간호사의 퇴사율이 48% 수준”이라며 “세브란스병원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참여 간호사들의 퇴사율은 0%였다”고 했습니다. 이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을 방지하고 일과 가정을 조화시킬 수 있는 삶의 질 개선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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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창현

공동체부 시민사회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