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과 결선투표
입력 : 2024-07-11 06:00:00 수정 : 2024-07-11 06:00:00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를 비판한 새누리당 의원에게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절묘한 비유로 유명한 노 전 의원의 어록 중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있는 '촌철살인'입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총선 결선투표 결과를 보면서 이 '외계인론'을 떠올립니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에서 33%를 얻어 1위를 기록한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 3위로 떨어지고, 2위(28%)였던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1위, 3위(20%)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 앙상블은 2위를 차지하는 대이변이 벌어진 겁니다.
 
극우 국민연합(RN)이 1당을 차지해 총리까지 맡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이성’이 작용하면서 좌파와 중도층이 연대하는 ‘공화국 전선’을 만들었습니다.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 후보 134명,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 후보 82명이 사퇴하면서 전국적으로 국민연합(RN)과 1:1 대결 구도를 만든 겁니다. 노 전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극우(외계인)에 맞서 중도와 좌파(지구인)가 연대한 셈입니다.
 
이는 제도적으로는 결선투표 덕입니다.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 전쟁 여파로 4공화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면서 대통령이 된 샤를 드골이 1958년 제5공화국 수립과 함께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했습니다. 알제리 전쟁 이후 극단 세력이 날뛰는 상황을 제어하고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프랑스는 '공화국 전선'의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올해는 총선이 무대였는데, 2002년에는 대선이 그 무대였습니다. 극우 국민연합(RN) 창립자인 장마리 르펜이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을 앞선 것은 물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불과 3%포인트 차이로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중도와 좌파 진영이 연합해, 시라크 대통령을 82.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시킨 겁니다.
 
오스트리아·핀란드·포르투갈·브라질·튀르키예·이란 등 대선 결선투표를 하는 나라들은 적지 않은데, 프랑스처럼 총선과 지방선거까지 결선투표를 도입한 나라들은 드뭅니다.
 
그간 한국 정치에서는 결선투표 도입이 논의'만' 돼왔습니다. 민주노동당-정의당 등 진보정당 계열에서 주로 도입을 주장했으나 안정적인 '1:다' 구도를 누려온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보수 독점 1:다 구도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본격 논의가 가능한 토대는 만들어졌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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