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쪽 난 광복절…갈라진 대한민국
정부·여당은 '세종문화회관', 광복회·야당은 '효창공원' 찾아
윤, 경축사서 과거사 언급 안해…일, 야스쿠니신사 봉납·참배
입력 : 2024-08-15 15:34:34 수정 : 2024-08-15 17:03:55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 등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같은 날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이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결국 '광복절 경축식'이 반쪽으로 치러졌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와 야당은 서울 용산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을 찾아 각각 별개의 행사를 열었습니다. 광복절에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 단체 기념식이 따로 열리는 건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여야 간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역사 논쟁까지 불이 붙으며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진 모양새입니다. 현재 진영 갈등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야, 광복회 주최 행사 참석…청중들 사이 "타도 윤석열" 
 
정부는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내외, 독립유공자 유족, 국가 주요 인사, 주한 외교단, 사회 각계 대표와 시민·학생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경축식을 진행했습니다. 정치권에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여당 의원 50여명이 자리했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단체인 광복회의 이종찬 회장이 이날 불참하면서 통상 광복회장이 맡았던 경축식 기념사는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대신했습니다.
 
같은 시각 광복회는 정부 공식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진행했습니다.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데 따른 겁니다. 이번 기념식에는 광복회원과 독립운동가 유족,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야당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치며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모여 독립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는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광복회가 이번에 자체 기념식을 개최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어 윤석열정부를 겨냥해 "안타깝게도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건국절을 들먹이는 이들이 보수를 참칭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회장은 또 현 정부에서 뉴라이트 성향 인사 출신들이 중용되고 있다는 점을 겨냥해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며 정부의 김형석 관장 임명을 꼬집었습니다.
 
이 회장의 기념사에 이어 축사를 하러 올라온 김갑년 교수(광복회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는 "친일 편향의 국정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하라"며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십시오"라고 하자, 청중은 "타도 윤석열"을 외치며 호응하기도 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충열대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마저 불참…역사논쟁 대립 '격화'
 
특히 국가 의전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번에 정부가 개최한 경축식 뿐만 아니라 광복회가 연 광복절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는 데 대한 부담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 의장을 비롯해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 지도부 인사들은 정부의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했습니다. 개혁신당의 경우 허은아 대표만 참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찬대 직무대행은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규탄 성명을 내고 "윤석열정권이 자행 중인 역사 쿠데타로 독립투쟁의 역사가 부정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가 묘역을 참배했고, 조국혁신당 지도부는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정권 굴종 외교 규탄' 회견을 열고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정부가 개최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한동훈 대표는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우 의장과 야당 지도부 인사들의 불참에 대해 "굳이 불참해 마치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밝혔습니다.
 
여야 간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22대 국회가 문을 연지 70여일이 지났지만 합의 처리한 법안은 0건입니다. 그만큼 정쟁 대립이 심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최근 뉴라이트 인사·건국절 논란 등으로 역사 논쟁까지 불거지면서 진영 간 대립은 더욱 격화됐습니다. 그 결과 광복절 행사가 보수·진보 진영으로 쪼개져 반쪽 행사로 치러지면서 둘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강점기 문제나 일본이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 등과 관련한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극일"에 방점을 찍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일본'이 없다"며 "참으로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지도급 인사들은 전쟁범죄자들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했습니다.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데 이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하며 항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한편 윤 대통령 부부는 육영수 여사 서거 50주기를 맞아 이날 경축식 참석 전 국립 서울현충원 내 육영수 여사의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박근혜 전 대통령에 안부 전화해 육영수 여사 관련 대화도 나눴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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