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경시 범죄·문화'…법은 이대로 괜찮나
입력 : 2024-09-13 16:42:49 수정 : 2024-09-13 16:42:49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사람의 생명은 인간존재의 바탕으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생명이 침해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므로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이 박탈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입법 등을 통해 국민의 생명권을 최대한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은 생명이 갖는 고귀한 가치에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최근 생명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범죄나 조롱 문화가 자주 나타나 사회적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도를 휘둘러 일면식도 없는 같은 아파트 주민을 살해한 사건을 비롯해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아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17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서초동 주점 화장실 살인사건) 8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서초동 주점 화장실 살인사건은 지난 2016년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서초동 주점 건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일면식이 없는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사진=뉴시스)
 
지난 11일엔 살인 사건에 관한 재판 결과들이 여럿 보도되었습니다. 울산지법은 자고 있던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남성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습니다. 아내가 외도하는 것을 알고 자고 있던 아내를 살해하고 상대방 남성을 찾아가 차로 들이받은 겁니다.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는 성관계하던 상대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남성에게 검찰이 징역 30년을 구형했는데요. 범행 후 사체에 물을 뿌리는 등 은폐를 시도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광주지법은 상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변기에 버린 친모에게 아동학대 살인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범인은 가족들의 비난과 아이의 아버지를 특정할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병 중인 아내를 10년간 간병하다 생활고를 겪자 살해한 남편의 안타까운 범행에 대한 선고도 있었는데요. 아내가 뇌 질환으로 신체 한쪽이 마비돼 남편이 병간호를 하면서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됐고, 2년 전에는 남편도 뇌경색 진단을 받고 디스크 증세까지 심해져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편에게는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최근 부천 호텔 화재나 시청역 교통사고와 같이 큰 인명피해가 난 사고에 대해 피해자를 조롱하는 글을 남기는 행위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데요. 최근 의사나 의대생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의료 파업사태와 관련해 국민이 정신을 차리려면 더 많이 죽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와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을 하므로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이 가장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의사나 의대생조차 일부는 사적 이익 추구가 수많은 생명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법정형만 보면 사람을 죽였는데 5년 이상의 징역은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요. 살인을 하게 된 동기나 방법 등과 같이 그 죄질이 천차만별이어서 처벌 범위가 넓게 규정된 겁니다. 따라서 사건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구체적 사정 때문에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나오기도 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법관이 합리적인 양형을 도출하기 위해 참고하도록 양형기준을 설정하는데요. 살인 범죄의 양형기준은 △참작 동기 살인 △보통 동기 살인 △비난 동기 살인 △중대범죄 결합 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등으로 구분되고 점점 높은 양형기준이 설정돼 있습니다.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에 해당한다면 기본 영역도 23년 이상이나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극악무도하게 사람을 살해하고도 태연한 태도를 보이는 흉악범의 사건이 보도되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데요. 사형을 집행한다면 그 위하력을 통해 흉악범죄를 억지할 수 있다는 점과 사람을 죽인 사형수를 먹이고 입히는데 사회적 비용을 들이면 안 된다는 이유입니다. 사형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데요. 국가에 의한 사형의 남용 가능성과 수사와 재판을 사람이 진행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생기는 오판 가능성, 실제 사형제도가 범죄율을 낮춘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듭니다.
 
현대로 오면서 형사사법의 목적이 처벌보다는 범죄자의 교화를 통한 재사회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형제의 대안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등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데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영구적으로 사회에서 격리하면서도 평생 본인의 행위를 반성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선고되는 무기징역은 가석방이 가능하므로 피해자 유가족이 재범과 보복 범죄의 우려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퍼지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극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배울 시간이 없었던 탓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할 텐데요.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10명 중 6명 이상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사교육을 시켰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부터 가족과의 시간보다 다른 학생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을 받는 시간이 많은 겁니다. 초·중·고 10년 성적으로 정해지는 대학 학벌에 따라 사회에서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누구나 당연시하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서 승리하기보다는 인간성 함양에 중점을 둬 교육하고, 경쟁에 이기지 않아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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