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퇴직연금)②'독립 운용사부족'..노후보장 멀었다
입력 : 2011-03-03 05:30:00 수정 : 2011-03-03 09:07:32


[뉴스토마토 안지현기자] 퇴직연금은 올해 금융권의 화두 가운데 하나다. 금융권에서는 앞다퉈 퇴직연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근로자의 노후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기본 취지와는 달리 과열 경쟁 등으로 오히려 근로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등 문제점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은행·보험·증권 등 각 금융업권은 '꺾기'를 통한 퇴직연금 가입 강요나 '계열사 몰아주기' 등으로 인해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단기로 운용되는 상품을 남발하는가 하면 상품운용사와 운용관리기관이 분리되지 않는 등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단기상품 남발..장기 운용 이점 누리지 못해
 
현재 퇴직연금이 지나치게 단기 위주로 운용되고 있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 가입액 중 운용기간이 1년인 상품은 전체의 69.4%로 가장 높았다. 그 밖에 운용기간 5년 이상인 경우는 3.9%에 불과했다.
 
이렇듯 퇴직연금 상품이 단기로 운용되는 데에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당장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고금리 경쟁을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 금융시장이 아직 10년 이상 단위로 운용되는 장기상품이 없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퇴직연금 중 90%를 차지하고 있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경우 기본운용기간이 1~3년 정도로 짧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아직 장기투자 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영향도 있다"면서 "적립식 펀드의 경우 평균 보유기간이 2년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기운용 상품 비중이 높은 것과 관련해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겸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그동안 장기 상품에 대한 수요도 없었지만 장기로 운용하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자산운용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지금처럼 운용되면 수익률이 높일 수 있는 등 장기운용 이점을 누리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퇴직연금 믿고 맡길 수 있는 '독립 운용관리기관' 있어야
 
퇴직연금 시장의 또 다른 문제점은 독립적인 운용관리기관이 부족하다는 점도 꼽힌다. 
 
하나의 퇴직연금 상품을 판매에서 운용하기 까지는 상품운용사와 운용관리기관, 자산관리기관 등 세 개의 기관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세 개의 기관이 독립적인 형태가 아니라 한 업체가 이를 수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경우 퇴직연금 사업자가 여러 업권 가운데 가장 좋은 상품을 모아 판매하기 보다는는 자사의 상품 위주로 판매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인 운용관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하남 노동연구원 박사는 "퇴직연금의 경우 연금 가입기업과 상품 운용자 사이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자산관리사업자(운용관리사)가 필요하다"며 "그동안 기업과 시장 사이에 중개자가 없다보니 견재와 균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칠레의 경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이란 공인된 자산관리사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 같은 규모를 가진 여러 개의 자산관리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열시장..근로자들의 선택폭도 제한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과열에 따른 불공정한 거래를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
 
주로 은행들이 주거래은행의 지위를 이용해 퇴직연금 가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꺾기'와 일부 계열사를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과열 경쟁이 결국 근로자의 선택도 제한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현재는 협상력이 큰 쪽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구조"라며 "결국 기업과 근로자 중에서도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근로자들의 선택권을 제한시킨다"고 지적했다.  
 
결국 퇴직연금 시장에서 전문성 있는 사업자를 선정이 아니라 기업이 이해관계에 따라 퇴직연금 계약이 맺어지면서 근로자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그 밖에도 현재 퇴직연금 개선을 위해 중간 정산 요건이 강화되고 사외적립금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퇴직연금의 중간 정산 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실질적으로 퇴직했을 때 남아있는 연금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외적립금의 경우에도 기준을 100%로 둬야 근로자들의 수급권이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
 
이같은 퇴직연금의 개선안은 2008년 11월 국회에 상정된 채 계류중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포함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는 ▲퇴직연금 상품 다양화를 위해 DB형과 DC형의 동시 가입 가능 ▲ 퇴직연금 수급권 강화를 위해 사외적립 비율 확대 ▲ 퇴직금 중간정산 요건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야 대립과 퇴직연금사업자들의 이권 다툼으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을 두고 '강제저축'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퇴직연금이 당장의 소비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미래를 위한 저축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국가'로부터 강제저축이라면 퇴직연금 제도는 '시장에 의한 강제저축'이다. 
 
방하남 교수는 "앞으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각각 국가와 시장이 강제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돼야 한다"며 "이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는 메커니즘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토마토 안지현 기자 sand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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