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선임기자] "아리셀은 집단교섭 회피말라!", "아리셀은 즉각적인 교섭에 나서라!", "노동부는 중대재해 예방하는 근본대책을 마련하라!"
아리셀 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외쳤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소재 리튬배터리 공장인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한 원인은 사측의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회사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측이 진솔한 사과도 없이 피해자와 유가족을 상대로 개별적인 회유에 나서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리셀 참사대책위원회와 유족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동부의 중대재해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아내를 잃은 유족 박모씨는 이날 "사고 이후로 아리셀은 유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었고 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 관계자도 얼굴 한 번 비친 적이 없다"며 "아리셀은 대국민 사과만 할 게 아니라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발언 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가족협의회의 김태윤 공동대표는 "가족협의회와 사측 간 대화는 지난 7월5일 30분 만에 파한 첫 교섭 이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가족협의회와는 연락을 끊고 유족 개개인들에게 '보상 합의안' 문자를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실제 사측은 "신속 합의하면 5000만원을 더 주겠다"며 노골적으로 보상 합의를 재촉하는 한편, '박순관 대표이사 등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불원서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측 변호사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회사도 힘들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문자를 보내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유족들은 사측이 이처럼 합의를 종용하는 데는 앞으로 열린 형사재판에서 박 대표와 박 본부장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들의 형량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지난 6일 경기남부경찰청의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업무방해,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로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을 수원지검에 구속 송치하고, 아리셀 관계자 등 4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박 본부장의 아버지이자 아리셀 모회사 에스코넥 및 아리셀 대표인 박순관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0분쯤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화재 사고와 관련,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근로자를 제조 공정에 불법으로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량 전지가 폭발 및 화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비상구 문이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되는가 하면,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있는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총체적 부실이 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이 비상구는 정규직 직원들에게만 출입카드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근로자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돼야 할 사고 대처요령에 관한 안전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리셀 참사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저임금 이주노동자에게 위험 업무를 떠넘기면서도 안전관리엔 손 놓은 한국 산업현장의 현실을 또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아울러 희생자 국적에 따라 보상금에 차등을 둔 사측의 합의안은, 외국인 차별 논란을 부채질했습니다.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벌었을 임금(일실수입)을 추산하는 대목에서 한국인 희생자에 대해선 국내 건설노동자(보통인부) 평균임금으로 산정한 반면, 중국동포 희생자에 대해선 중국 길림성 평균임금을 기준 삼은 것입니다. 중국 길림성 임금은 국내 임금의 5분의 1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주노총 경기본부 관계자는 "사측의 이러한 비인간적 태도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주민 차별·혐오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측은 위험이 이주노동자에게 오로지 전가된 점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커녕 유족들에게 ‘빨리 끝내라’고 닦달하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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