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자체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주요 의사 단체가 불참을 통보한데다, 야당도 당사자들의 참석이 중요하다는 입장인데요.
특히 정부와 여당이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의료대란 해법에 대한 갈등만 표출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료대란을 놓고 윤-한(윤석열 대통령·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갈등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필수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사진=뉴시스)
추석 전 출범 무산…의료계 참여 '전무'
12일 한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추석 전에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해야 한다"며 "전제를 걸 이유도, 의제를 제한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지금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지를 얘기할 때고, 여야의정협의체가 그 통로가 될 것"이라며 "여야의정 모두 대화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말고, 대화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의료계는 단일대오를 갖추기 어렵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며 "참여하는 의료계와 함께 일단 출발하고, 얼마든지 의료단체에서 추가로 참여할 수 있게 하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도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 자체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는데요. 대신 의료대란의 당사자이자 대표성을 갖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의 참여가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의 필수조건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의료계 주요 단체들은 정부와여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 야, 정부, 대통령실이 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협의체에 들어갈 의사가 전혀 없다"며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난 2월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 역시 아직까지 여야의정 협의체 참석에 대한 통일된 뜻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은 무산됐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추석 전 출범 못하는 것과, 응급의료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다른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협의체 출범과 응급의료 체계 대응을 분리하겠다는 것으로, 협의체 출범이 어렵다는 걸 인정한 겁니다.
또 국민의힘이 지난 10일 의사와 병원 관련 단체 15곳에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확답을 준 곳도 없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에서 일단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고 밝혔지만 전의교협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화일보 주최로 진행된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와 인사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대 한덕수 '격돌'
의정 갈등에 따라 발생했던 윤한 갈등이 다시 점화할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한 대표는 지난달 25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안'을 제시했다가 거절 당한 바 있는데요. 이후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이 연기됐습니다. 특히 만찬 연기 소식도 한 대표 측보다 추경호 원내대표 측과 먼저 조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윤한 갈등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한 총리가 참석한 이번 당정협의회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한 대표는 "일부 (정부)관계자들의 다소 상처를 주는 발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상처 주는) 발언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지금 상황에서 전공의들에 대한 사법적인 대응에 신중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며 "의사 블랙리스트 논란 같은 것으로 대화의 시작에 방해가 있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후 열린 비공개 당정협의회에서는 한 대표와 한 총리 사이의 격론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집니다. 한 총리는 '2025년 의대 정원' 조정안을 여야의정 협의체 의제로 올릴 수 없다고 밝혔고, 이에 한 대표는 "의료 체계를 책임질 수 있냐"고 되물었다는 겁니다.
결국 의료계 설득의 핵심인 '2025년 의대 정원' 조정안에 대해 정부가 타협 불가론을 앞세우면 윤한 갈등은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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